다대포의 일출
지명의 유래는 큰 포구가 많은 바다라는 데서 비롯되며, 《일본서기 日本書紀》에는 다다라(多多羅)로 기록되어 있다. 이곳은 일찍부터 왜구의 출몰이 잦았으며, 따라서 국방상 중요한 요새지였다. 조선 세종 때는 이곳에 수군만호영을 설치, 수군 123인과 병선 9척을 배치하였고, 성종 때는 높이 4m, 둘레 560m의 다대포진을 축성한 바 있으며, 임진왜란 때 다대포첨사였던 윤흥신(尹興信)과 그 동생 흥제(興悌)가 왜군과 접전을 벌여 전사한 유서 깊은 곳이다
일출과일몰
2016. 5. 19. 18:17